- 모자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했고, 럭셔리 마케팅 사업도 해봤고,

그래픽 디자인 회사도 운영해봤어요.

치열하게 살던 어느 날, 아이와 좀더 친밀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모든 걸 내려놓고 2년쯤 쉬었습니다.

다시 뭔가 시작해야 할 시점에 왜 모자 디자인을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여러 차례 들었어요.

학창 시절, 100만원짜리 유럽 여행을 가서

그중 40만원을 모자 구입에 쓸 정도로 모자 마니아였으니까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라는 생각에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열정적으로 빠져들었어요.

지난 1월 귀국해 2015 S/S 컬렉션으로 데뷔했죠.



- ‘신저’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쓰는 건 절친의 제안이었어요.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인 만큼

더 책임감을 갖고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죠.



- 모자를 만들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뭔가요?


미니멀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작고 귀여운 피규어를 좋아할 수 있어요.

같은 사람도 다양한 취향을 지닐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 여러 취향을 조금씩 믹스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모던한 동시에 아방가르드한 모자를 만들고 싶어요.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실루엣입니다.

페도라 하나를 만들더라도 좌우 길이를 다르게 재단해

자연스럽게 비대칭 실루엣을 완성하는 식이죠.

몰드 제작부터 새롭게 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 처음으로 만든 모자를 기억하나요?


상하좌우 모든 면이 다르게 보이도록 만든 드레이핑 모자였어요.

뉴욕에서 보낸 첫 여름, 펠트 한 장으로 모자를 완성하는 수업이었죠.

땀을 뻘뻘 흘리며 펠트를 다림질해

형태를 잡아나가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여전히 이 모자를 보면 당시 힘들던 시간이 떠올라

초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 어떤 사람들이 ‘신저’의 모자를 쓰길 바라나요?


어린 시절, 어른들은 저를 보시면 사기당하진 않을까

걱정된다고 할 정도로 유약한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모자를 써서 저의 약함을 가리고 싶었죠.

모자를 쓰는 순간 왠지 어깨가 쭉 펴지고

에너지를 얻는 느낌이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제 모자를 통해 그런 에너지를 얻길 바랍니다.



- 액세서리로서 모자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모자를 좋아하긴 하지만, 매일 모자를 써야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모자가 꼭 필요한 순간이 있죠.

한국엔 “나는 모자가 안 어울려”라고 말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아요.

그런 생각을 무마시킬 만한 모자를 만드는 게

모자 디자이너의 역할이겠죠.

“모자가 나한테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왜 몰랐지?”라고 할 수 있도록.



- 대중화되긴 했지만, 모자는 여전히 스타일링이 쉽지 않아요.


쇼룸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가장 많이 전하는 말은

“여기부터 저 끝까지 전부 다 써보세요!”입니다.

모자는 직접 써보지 않고선 절대 고를 수 없어요.

평소 와인색 옷이 잘 받는 편이라고 해도

와인색 모자는 잘 안 어울릴 수 있거든요.

무조건 많이 써보는 게 해답입니다.

단, 옷과 모자의 소재를 맞추는 건 피하세요.

모피 코트에 어울릴 모피 모자를 찾는 사람도 있는데,

그땐 무조건 말려야 합니다.



- 만드신 모자중에 어떤 모자를 가장 좋아하나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장면에서 영감을 얻은 드레이핑 모자가 있어요.

뉴욕에서는 가장 즐겨 썼죠. 최근에 가장 자주 쓰는 건 페도라에요.

적절히 남성적인 실루엣이 매력적이죠.


- 모자를 끝내주게 쓰는 인물은 누군가요?


지드래곤! 거대한 모피 모자를 써도 그토록 완벽하게

소화하는 인물은 지드래곤뿐일 거예요.



- 존경하는 모자 디자이너가 있나요?


해외 모자 전시에서 스티븐 존스를 만난 적 있어요.

아주 재미있고 열정적인 인물이었죠.

특정 원단은 어디서 사는 게 좋은지부터

세세한 정보까지 친절하게 공유해줬어요.

흔히 필립 트레이시와 스티븐 존스를 자주 비교하는데,

트레이시의 모자가 완벽 그 자체라면,

존스의 모자는 좀 더 위트 있고 여유로운 것 같아요.



- 모자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나요?


첫 해외여행으로 호주에 갔는데

정말 비현실적으로 멋지고 비싼 모자를 발견했어요.

여행에서의 모두 재미를 포기한 채 결국 그 모자를 구입했어요.

그것을 안고 귀국하는 길이 어찌나 행복하던지!

임신 기간 동안, 예쁜 모자를 쓰지 못할 땐 너무 아쉬운 나머지,

출산하자마자 몸을 추스르기도 전,

병원 옆에 있는 모자 가게에서 모자를 구입한 적도 있어요.



- ‘신저’가 어떤 브랜드로 성장하길 바라나요?


모자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첫 번째 모자가 되고 싶어요.

‘신저’를 시작으로 여러 브랜드의

다양한 모자를 즐기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모자 브랜드 '신저'의 브랜드 철학은 뭔가요?


다양성입니다.

신저의 모자는 선이 살아 있는 매니시한 스타일과

아방가르드하고 여성성이 강한 스타일,

이렇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모두 제가 가진 캐릭터인 동시에 추구하는 스타일입니다.

상반된 성격이지만 모두 제 모습이에요.

어떤 사람이든 한마디로 그를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모두 내면에 여러 가지 캐릭터를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내면의 모습을 모자를 통해 드러내길 바라요.

‘Let me unveil you’라는 브랜드 슬로건처럼요.




-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나 스타일이 있나요?


꼼데가르송처럼 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신저 모자에서도 드레이핑 같은

조형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디테일이 눈에 띄죠.



- 평소 스타일링할 때 모자를 먼저 고르나요?


전날 미리 스타일링해놓는 편은 아니에요.

무심한 듯 편한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그런 탓에 마지막에 스타일리시한 모자로 힘을 주곤 해요.

하지만 특별한 날엔 모자를 먼저 고르고 챙의 길이

 크라운 스타일에 따라 전체적 룩을 맞춥니다.



- 모자 입문자에게 팁을 준다면요?


저보다 모자를 좋아하는 마니아도 있지만

대부분의 손님이 모자는 특별한 상황에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여행지에서요.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모자를 찾는다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그러려면 많이 써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 번, 두 번 시도하다 보면 용기가 생기고

그러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자를 찾으면 계속 손이 가게 돼요.

자신감을 갖고 많이 써보세요!








- 예술적인 모자도 있고 실용적인 것들도 있다.


‘프로젝트 에스’라는 개인 아트 피스 만드는 라인이 있고,

‘익스클루시브’라는 핸드메이드 라인이 있다.

대부분 드레이핑 작업을 통해서 테마가 정해지고,

거기서 파생한 작업을 실용적인 컬렉션으로 이어나간다.



- 디자인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이든 외국인이든 단골 멘트가 있다.

‘나는 모자가 잘 안 어울려’라는 말이다.

모자를 쓴 자 신의 모습이 낯설어서,

약간의 두려움과 거부감이 생기는데,

그런 걱정이 있는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디자인하려고 한다.



- 디자이너로서 최근에 고민되는 점이 있다면?


디자이너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고집스럽고,

철학이 뚜렷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이 유통 단계로 넘어가 고객을 만나니

그들이 원하는 게 보이게 되더라.

자신의 철학은 접어두더라도

더 잘 팔리는 것을 만들까 하는 갈등도 생긴다.

이럴 때 멘토가 있으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내가 너무 자존심이 센 건지,

아니면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건지 말이다.




-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주요 백화점이나 편집매장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욕심으로는 이번 가을에 바니스 뉴욕이나 봉마르셰 바이어들을 만나고 싶다.

쇼에 네 번 참가했기 때문에 브랜드는 알지만

계속 지켜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시즌엔 주문서를 작성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국내에선 압구정에 플래그십 스토어도 오픈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국내 시장에서도 안정을 찾는 것 역시 또 하나의 목표다.






Style H






SHINJEO (신저)라는 낯선 이름의 모자를 만났다.

아방가르드하면서도 웨어러블한 모자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디자이너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그녀의 이름은 박신저.

패션 이벤트 프로모션을 하다 모자 디자인으로 전향했다는 홈페이지 속 짧은 단서만으로 그녀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 모자 디자인의 절대 규칙


지루하지 않은 모자.

평범한 듯해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별한 커팅이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편안함은 기본!

VOGUE

에디터 임승은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NOBLESSE

에디터 김유진

포토그래퍼 정태호

헤어 & 메이크업 김민지

W

에디터 곽새봄

포토그래퍼 AN JISUP

모델 지현정

헤어 & 메이크업 박선호, 한지선, 이준성, 박이화


Style H

에디터 김지은